전날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단기 금리를 연 -0.1%, 장기 금리를 0%로 유지하는 한편 장기 금리 변동 허용폭을 ±0.25%에서 ±0.50%로 확대했다. 일본이 금융완화를 축소한 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기준금리는 동결했지만 장기 금리 변동폭을 두 배로 늘리면서 금리가 이틀째 크게 올랐다. 이날 일본 채권시장에서 장기 금리의 기준인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연 0.48%까지 올랐다. 전날 금융정책결정회의 직전 연 0.25%였던 금리가 하루 만에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4월 이후 가장 큰 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은행이 통화완화 정책을 전격적으로 수정한 것은 합리적 조치라는 평가를 내놨다. IMF 일본 대표단 라닐 살가도 단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채권시장 기능에 대한 우려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은행이 YCC(수익률곡선 통제)를 조정한 것은 합리적 조치”라고 밝혔다.
주식시장은 이틀째 약세를 이어갔다. 닛케이225지수는 전날보다 0.68% 떨어진 26,387.72로 거래를 마쳤다.
회사채 발행 비용이 불어나 기업의 자금조달도 어려워지게 됐다. 고바야시 신이치로 미쓰비시UFJ리서치앤드컨설팅 수석연구원은 “재무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기업 활동이 억제되면 임금이 오르지 않아 소비와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예상했다.
일본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현재 일본의 국가채무는 1255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8%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매년 8조엔을 국채 원리금을 갚는 데 쓴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일본 정부의 연간 원리금 상환 부담은 3조7000억엔 늘어난다. 다만 엔저(低)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기업의 원자재 수입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금융시장은 일본은행의 다음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구로다 총재는 “(이번 결정은) 출구전략을 향한 첫걸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이미 일본은행의 출구전략이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직전 회의(지난 7월과 9월)에서만 하더라도 “±0.25%인 장기 금리 변동폭을 변경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 구로다 총재가 다시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추가 금리 인상을 점친 미국과 유럽 헤지펀드가 일본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하면 장기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일본은행이 장기 금리 변동폭을 추가로 확대하거나 장기 금리의 기준을 10년 만기 국채에서 5년 만기 국채로 바꾸는 시나리오 등이 점쳐지고 있다. 내년 4월 구로다 총재의 임기 만료 후 차기 총재가 취임하면 일본은행이 2016년부터 유지해온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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